Diary

남해대교 사진사


<박용길 사진사>

1973년 남해대교 개통 후 전국에서 몰려든 방문객들에게 남해대교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사들이 있었다. 그 사진사라는 일을 마지막까지 한 박용길(1952년생) 어르신을 만났다. 박용길 어르신은 부인과 함께 남해대교 아래 노량마을에서 대교 건어물 이라는 건어물집을 하며 대교와 인연을 이어오고 있었다.

박용길 어르신은 집안의 형 되는 분이 김해에서 사진관을 했다고 한다. 젊은 시절 뭘해서 먹고 살까 고민하던 중 그 형님이 여기와서 일 좀 도와라 해서 김해 사진관으로 가서 1년 가까이 먹고자며 배웠다고 한다. 고향인 설천으로 내려왔는데 그때가 1975년도 란다. 그렇게 하여 대교 사진사일을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대교에 사진사는 17-19명 정도 였고 하동출신 사진사, 남해 출신 사진사들이 있었고 이 들은 모임도 만들어 함께 놀러도 다니고 했단다.

<남해출신 사진사 진양호 놀러가기 전 단체사진>

사진사들은 유람객들이 남해각 주차장이나 대교 아래 공터에 내리면 가서 남해대교가 몇년에 착공하여 몇년에 완공하였고, 충렬사는 어떤 곳이고 하며 지금의 ‘문화재 해설사’ 역할을 한 것이다. 박용길 어르신은 그 말을 하며 바로 “남해대교는 높이가 60m 길이가 660미터이고 68년에 착공하여 73년에 준공한” 이라며 줄줄 외었다. 사진사들의 일은 ‘사진찍기->영수증을 고객에서 발행, 자신의 장부에 주소와 함께 정리->컬러 사진은 진주로 보내 현상, 흑백은 본인이 집에 돌아가 스스로 현상->고객에게 발송’ 이고 대략 흑백은 5일 컬러는 7일 정도가 소요됐다고 한다. 흑백 사진은 200원/컬러 사진은 500~600원 이었고 그 당신 우표가 10원 등기가 30원 이었고 남해에서 부산가는 여객선 갑성호가 170원, 버스비가 270원 이었다고 하니 대략 물가가 짐작 된다.


<산성산에서 남해대교를 배경으로>

손님들은 사진사들에게 “좋은배경 없어요?” 라는 질문을 하면 사진사가 안내하여 이렇게 산성산에 올라 찍기도 하고 하동 노량으로 건너가 찍기도 했다. 하루에도 수십번 남해대교를 걸어서 왔다갔다고 한다.
1970년대 남해대교 사진을 보면 차량이 별로 안보이는데 어르신 말이 1970년대 중반까지 남해대교를 통행한 차량은 하루 200대 정도 밖에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사진사 들끼리 차량번호 뒷 자리 알아맞추기로 빵내기도 하고 그랬단다.


<박용길 어르신과 여동생 박용자님>

남해대교 아래 노량은 만남의 광장이었는데 대교가 개통되기 전에는 배가 육지로 나가는 유일한 수단이었기에 여수-노량-삼천포-통영-거제-부산 을 오가는 갑성호의 선착장인 남해대교 아래 노량에서 육지로 나가거나 육지에서 오는 친인척들을 맞이했다고 한다. 남해대교 개통 이후에도 몇년간은 배가 계속 다녔단다. 위 사진처럼 설날을 맞아 박용길 어르신의 여동생은 부산에서 고향으로 왔고 이렇게 배웅을 했다고 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남해대교는 어르신에게 어떤 곳인가요?” 물으니 “남해대교 때문에 내가 살게 됐다.” 라며 고마운 다리 고마운 다리라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는데 멸치 두 박스를 수줍게 내밀며 가져가라 한다.
인터뷰를 해준 것 만으로도 고마운데 우리에게 선물을 주시다니. 우리 연구팀에 대한 고마움이라기 보다는 남해대교라는 건축물을 하나의 사람으로, 그 사람이 다시 활동하고 그때의 기억을 보존한다는 그 고마움 일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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