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해태 브라보콘

앞서 언급했듯이 남해각은 해태제과가 제과사업 성공을 발판으로 관광업에 뛰어들어 조성한 공간이다.
강외자님(1956년생, 노량마을)의 제보를 들어보면, 그 당시 남해각에는 해태제과의 제품을 진열하여 판매했다고 한다.남해에 없는 고급간식거리를 사 먹을 수 있는 곳이었고, 처음으로 그 간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었다고 한다. 남해각에는 양식당도 있었는데 그곳에서 처음으로 ‘돈까스’를 먹어본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오늘 저녁에 브라보콘 사먹으러 가자!”

해태제과는 1970년 4월에 국내 최초로 브라보콘 이라는 아이스크림을 출시 했고 남해각을 통해 남해에 전파되었다. 남해에는 아이스크림 즉 우유가 듬뿍 들어간 아이스크림콘이 없었고 단물을 얼려먹는 하드바만 있었다고 한다. 강외자님은 동네언니와 그것이 먹고 싶어 남해각에 갔더니 가격이 너무 비싸 깜짝 놀라 사먹지 못했다. 그러다가 한 무리의 총각들이 있길래 “남해각에서 아이스크림 사달라”라고 말했는데 총각들은 흔쾌히 승낙하고 남해각으로 들어가 앉더니 “각각 20개씩 먹으면 우리가 돈을 내고, 못 먹으면 너희들이 내야한다” 했단다. 동네 언니는 20개를 먹었는데 먹다가 강외자님은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그랬더니 동네언니가 뒤로 몰래 자기한테 주라고 하면서 9개를 더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동네 언니는 29개 본인은 11개를 먹고 브라보콘을 총각들에게 얻어 먹었다고 한다. 물론 돌아와 병원에 가 드러눕고 난리가 났고.

“호박국 잘 먹는 내아들아, 호박국 잘 먹는 내 아들아.”

남해각 아래 노량마을 선착장은 육지와 연결해주는 배가 드나들어 만남의 광장 이었다. 그 당시 고급 양식당이 있어 젊은 청춘남녀, 결혼식 상견례 자리로 만남의 장소 였다.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지만 헤어짐의 장소이기도 했다. 강외자님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 어린시절 선착장에서 “호박국 잘 먹는 내 아들아, 호박국 잘 먹는 내 아들아.” 라고 땅을 치며 우는 할머니를 봤는데 엄마한테 물어보니 아들이 군대가서 배 태워놓고 저렇게 운다고 했단다.

어린이날이 되면 포화상태가 되었는데 사람들이 하도 많이 와서 노량마을 사람들은 “대교는 흔들려야 대교다.” 라고도 말할정도였고 방문객들은 남해대교를 걸어서 왔다 갔다 하며 “남해대교를 3번 건너지 못하면 저승 못간다.”라고 했단다. 남해대교는 그 건설과정도 놀라운 광경이라 교각을 세울 때는 엄청난 바지선이 왔고 그 것을 보려고 구경꾼들이 몰렸다 할 정도다. 그런 공사에서 사람 한 명 죽은 적 없었는데 노량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이 노량 앞바다를 지켜주어 그렇다고 한다.

“들고만 나가면 팔려요!”

남해대교를 짓는다고 했을 때 노량마을 사람들은 이제 선착장이 없어져 사람들 드나듬이 적겠다고 했단다. 그런데 상상도 못한 ‘관광’이라는 개념으로 남해대교를 보러, 남해각에서 만나서 쉬러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남해대교 기념 타올 몇 장을 손에 걸고만 가도 팔렸고, 뱃지도 불티나게 나갔다고 한다. 진주 기념품 도매상이 한 번씩 와서 노량마을 사람들한테 내려주고 가면 그렇게 팔아 하루 일당을 벌 정도였다고 한다. 파리 에펠탑과 기념품이 떠오를 정도다. 그렇게 보면 남해대교는 파리의 에펠탑과 같은 남해의 랜드마크 였고 남해각은 선진문물을 전달하는 창구였다.

남해각은 이와 같은 ‘문화적 기억’을 살려내야 하는데 남해로 들어오는 ‘文物의 창구’, ‘만남과 헤어짐이 뒤섞이는 공간’, ‘남해를 기념하는 공간’을 담당하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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