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이정례 님

이름. 이정례

일시. 2019년 10월 2일

장소. 남면 사촌마을 이정례님 댁

참석자. 이정례, 최승용(헤테로토피아 책임연구원), 서성경(헤테로토피아 연구보조원)

 

이정례 : 엊그제께 생각이나서 한번 해보자 해서 했더니. 나는 건너갈 적에 다리가 흔들려서 사람들이 모두 좌우로 흔들면서 웃으면서 갔거든요. 근데 그 많은 사람이 겪었는데 아무도 그 소리 하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전화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누가 있더냐 그러니까 있더라 그러던데. 그런 사람이 있었을까요?

최승용 : 흔들렸다는 말은 했는데 개통식때 갔던 사람은 못 찾았어요. 

이정례 : 흔들려서 앞 뒤 사람이 전부. 그래서 막 웃어, 엄청 재밌잖아. 

최승용 : 막 웃었어요?

이정례 : 네. 다리가 흔들리니까 떠들어대겠다 했어요. 뉴스나 신문이나 잡지에 흔들리는 다리로 유명해지겠다 이런 생각을 했는데 거기에 대해서 아무도 말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건너갈 때 다 겪었는데 어째 그러나 싶었는데.

최승용 : 다리에 꽉 찼었다면서요?

이정례 : 네. 나는 기억을 못하는데 우리 할배가 그러던데. 그때 할머니가 한 사람 깔려 죽었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그럴 때 상황으로는 도선에 버스를 싣고 다닐 때라 여기 남해 노량 내려서 공터에서 식을 하고 테이프를 자르고 한 번에 사람이 가파른 곳에 올라가니까, 만약에 사람이 엎드렸다하면 일어나지도 못하고 밟히는 상황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죽었다는 소문만 들었지 확인한 건 아니고. 내가 지금 같으면 전화기를 가지고 다니며 동영상을 찍었을텐데 그럴 때는 그런 것도 없을 때고. 하여튼 재밌었어요. 근데 그 시간이 얼마 안 돼. 한 몇 분 정도밖에 안 돼. 끄트머리까지 가기 전에 멈춰지더라고요. 돌아올 때는 아무 것도 없더라고.

최승용 : 출발지점이 하동쪽이었어요?

이정례 : 남해쪽. 하동쪽으로 가는 중간에 그랬어요. 

최승용 : 그래서 다시 되돌아왔어요?

이정례 : 예. 내가 친정이 진교면 백여리 신기거든요. 아마 시집와서 엄마 제사 모시러 갔을거야. 시집와서 다음 해인데 애기를 가졌었는데 엄마 제사 모시러 갔다 오는 길에 개통식이 하고 있으니까

최승용 : 개통식에 참여하려고 간건 아니고 도선타고 하동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이정례 : 집에 오려고 오는데 운 좋게 마주친거죠. 

최승용 : 저도 하동 사람이에요. 

이정례 : 아 그렇습니까. 나는 사실 태어나기는 남해에서 태어났는데 5살때 하동으로 이사를 갔어요. 거기서 컸거든요. 그래도 큰 언니와 둘째언니가 남해에서 결혼하고 갔기 때문에 한 번씩 언니 집에 온다고 오고 그랬어요. 처음에 이사갈 때는 버스도 안 싣고 다니고 배가 다녔어. 

최승용 : 남해에서 아버님이 사시다가 어머님이 5살때 하동으로 이사갔어요? 

이정례 : 네. 그거 밖에 없어요. 사진도 없고. 그 날 너무 많은 사람이 한 번에 밀려가지고 다리로 들어가니까 하중을 못 이겨서 흔들리는 가보다 했어요.

최승용 : 옛날에는 도선으로 왔다 갔다 했어요?

이정례 : 네. 버스가 없이 도선으로 왔다 갔다 했는데 여기서 도선을 타고 건너가면 버스가 기다리고 있어요. 그럴 때는 안내양이 있는데, 남해 노량에는 버스가 설천으로 돌아가는 차도 있고 요쪽으로 가는 차도 있고. 서로 자기 차 타라고 그러더니. 한참 그렇게하고 중간에는 도선에 버스를 싣고 다니고, 버스를 싣고 다니다가 다리가 개통되어가지고 도선이 필요없게 됐지.

최승용 : 그 때 아버님이 남해 어디 사시다가

이정례 : 친정아버지는 남면 가천에요. 

최승용 : 가천에 사시다가 하동으로 갔다가 어머님이 거기서 크다가 시집을 남해로 다시 오고.

이정례 : 네. 아버지가 딸만 많아. 옛날에 어디 물어보면 타간물을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가지고 이사를 갔대요. 

최승용 : 타간물이 뭐예요?

이정례 : 내가 살던 동네가 아닌 다른 동네. 

최승용 : 그러면 아들을 못낳으셨어요? 

이정례 : 아들이, 동생이 하나 있긴 있습니다. 우리 엄마는 먼저 돌아가셨고 아버지가 아들 볼 거라고 다른 새엄마가 아들을 하나 낳긴 낳았어요. 우리집에 딸이 엄청 많아요. 딸이 아홉이예요. 

최승용 : 우와. 상상할 수가 없네요. 요즘에 아홉이라는 건

이정례 : 요즘은 상상할 수 없지만 옛날에는 더러 있었어요.

최승용 : 그러면은 거기서 몇 째 세요?

이정례 : 내가 넷째. 우리 엄마가 낳기는 아들 둘, 딸 여섯을 낳았는데 아들 둘하고 딸 하나는 먼저 보내고 살아있는 순위로는 넷째. 

최승용 : 그럼 아예 막내랑 나이 차이가 꽤 있겠네요? 

이정례 : 아예 막내는 우리 큰딸하고 한 동갑이거든요. 마흔 일곱이네요.

최승용 : 남해대교를 보면 어떤 마음이 드세요?

이정례 : 제일 처음에는 동양 최대의 현수교하더니, 요새는 그냥 보통으로 다니다보니 특별히 어떤 마음이라기보다는 그냥 다리를 건너 다니는 게 편안한 느낌. 그리고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반가운 느낌? 그냥 내가 살던 땅인가 싶어서 인지 몰라도. 그런데 다리가 한 개 더 생겼는데

최승용 : 그러니깐요. 그거는 사람들이 정이 안간다 하더라고요. 너무 크고 콘크리트 색도 그렇고. 배 타고 다닐 때는 엄청 불편했겠네요.

이정례 : 그래도 방법이 그거 밖에 없으니까. 불편해서 안되겠다라는 생각은 못했지.

최승용 : 날씨 안좋으면 못 뜨죠?

이정례 : 가까우니까 웬만하면 뜨더라고요.

최승용 : 그때는 부산도 배타고 다녔다 하더라고요.

이정례 : 배타고 다녔죠.

최승용 : 가보신 적있어요?

이정례 : 배타고는 없죠. 진교에는 부산가는 차가 있거든요. 아침밥 먹고 가면 하루종일 걸려. 부산까지 가는데. 지금은 2시간이면 가니까. 이만큼 좋아졌는데 살기가 힘들어. 주변은 좋아졌는데도 사는 게 팍팍해. 

최승용 : 그건 왜 그럴까요?

이정례 :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으니까. 그때는 먹고 사는 거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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