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신병윤 님

이름. 신병윤

일시. 2019년 10월 16일

장소. 삼동면 독일마을 경로당

참석자. 신병윤, 최승용(헤테로토피아 책임연구원), 서성경(헤테로토피아 연구보조원)

 

신병윤 : 1975년도. 우리가 그 때 오니깐 남해대교가 2년 됐다고 하더라고. 독일에서 첫 휴가 나와 가지고. 고향이 진해인데. 그때만 해도 다리 놓고 그런게 없었거든요 이 주변에. 그래서 형님들이 놀러가자고 하더라구요. 

최승용 : 선생님은 언제 독일로 가셨나요?

신병윤 : 71년도에 갔지. 국가 대 계약으로 갔지. 광부생활을 한 6년 했지요. 그때 휴가 한 번 받아가지고 왔지. 그때 남해대교 입구에서 쳐다보니깐, 노량해협을 보니 그렇게 좋더라고. 나중에 여기와서 살아봤으면 좋겠다 했지.

최승용 : 고향 진해도 좋지 않나요?

신병윤 : 진해는 내가 옛날 어릴 때 고향하고 많이 바뀌어 버렸어요. 내가 떠나기 전 군대생활 할 때 까지만 해도 그래도 집 뒤에는 논밭이 있고. 오랜만에 오니깐 개발이 다 되가지고. 남해를 오니깐 옛날 그대로더라고. 내가 어릴 때 느꼈던 그게. 저녁 되면 꾀꼬리 소리 들리고 자연이, 내 고향은 이미 사라져 버렸고 개발이 되어서. 여기 오니깐 옛날 그대로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이 그대로 있더라. 그래서 마음에 들었지. 구체적으로 남해대교에서 바라본 노량해협, 주변에 있는 민가들이 향수를 자극 했다는 것이죠. 그렇게 하고는 독일 가서 생활하며 전혀 다 잊어버리고. 원래 귀국 안 할라 했어요. 영원히 살라고 했는데 귀국하게 되어서 귀국하긴 했는데. 또 남해는 생각도 못했지. 신문지상에 보니깐, 텔레비전 보니깐 아 독일인 마을이 나오더라고. 나는 그때는 귀국해서 수원에 살았어요. 

최승용 : 귀국한 년도가 어떻게 되세요?

신병윤 : 89년도. 

최승용 : 귀국했던 이유는 독일에서 직업적으로 끝나서 돌아오신건가요?

신병윤 : 독일에서는 연금이 65세까지 독일에는 65세가 되어야 연금을 줍니다. 기본적으로 25년을 해야 돼. 25년을 해야 제일 기본 연금이 되는거지. 25년이 안되면 내 노동기간이 연금을 안줍니다. 65세인데 연금 들어 갔는데 내가 일을 한 횟수가 23년 밖에 안되면은 2년을 또 채워야해. 독일은 어떤 일을 해도 연금은 다 나옵니다. 65세가 되면 그 전에 미리 받는다 그런게 전혀 없어요. 

최승용 : 제 친구가 베를린 예술대학하고 함부르크에 있는데 정말 좋다고 그러던데요. 

신병윤 : 내가 직장 하나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이 돼요. 의료 100프로 무료지요. 애들 자녀교육 100프로 무료지요. 사교육 없지요. 애들 17-18세 되면 일자리 다 나가지요. 

최승용 : 고향에 대한 향수는 없으셨나요?

신병윤 : 나는 오년마다 한국 나왔어요. 휴가 나왔습니다. 그게 뭐냐면 향수에요. 향수라는 것은 약이 없어요. 고국에 왔다가 하늘 땅 부모 형제 친구 만나면 그게 약이에요. 그 때 당시에 내가 한 번씩 나오면 돈이 얼마 드냐면 벤츠 값 한 대 값이 나와요. 근데 병이 나면 와야만 낫지 약이 없어요. 우리는 오년마다 한 번씩 왔었어요. 내가 벤츠 다섯 대 값 날렸다. 독일에 광산 지역이 대한민국으로 말하면 강원도 여기에만 집중되어 있어요. 한 지역에만 르루 지역에만 광산지역이니깐. 우리 교포들이 많이 있었지요. 우리가 독일에서 15년 정도 일을 하게 되는데 한 이만명이 1/3은 귀국, 1/3은 아메리카 쪽으로 이민, 1/3은 독일에 머물러 살고. 우리는 한 지역에만 있었는데 간호사들은 사방팔방에 흩어져 있었지. 우리가 결혼하면 부인 있는 곳으로 가지요. 

최승용 : 귀국했던 이유가 있나요?

신병윤 : 독일에서는 돈 좀 벌었으니깐. 한국으로 와서 투자도 하고 먹고 살만하겠다 하면서 왔지요. 그런 마음도 있었지. 

최승용 : 그러면 89년도에 수원으로 오셔서 남해 독일마을로 오기까지는 얼마나 걸리셨어요?

신병윤 : 한 20년 걸렸어요. 내가 여기 2008년도에 남해로 왔어요. 

최승용 : 그때 오셔서 남해대교를 다시 보셨겠네요. 지날 때 마다 75년도 방문 했을 때 생각이 나시겠네요.

신병윤 : 생각나지요. 그 때 이 씨앗이 된 방문이 인생 운명이라는 것이 그렇게 됐네요. 남해라는 곳은 앞으로 괜찮다고 봅니다. 독일에서 생활해 보니깐. 독일 사람들은 휴가를 꼭 갑니다. 갔다오면 각자 이야깃거리가 있는데 회사나 학교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지요. 안 갔다 오면 자연히 왕따 되지요. 그러니 안 갈 수가 없어요. 휴가비는 저축을 해가지고. 한 이주정도 스페인 이탈리아 싸니깐. 그런데 프랑스는 좀 비싸. 우리는 차타고 밤새 가요. 그래도 갔다 와야돼. 우리는 그런 문화가 아니였잖아요. 우리도 따라하는거지. 우리가 지금 1/2이 수도권에 다 있지 않습니까. 경남도 인구가 자꾸 줄어든다고 하는데 어디로 가겠습니까. 전부 위로 다 가지요. 수도권에 사는 사람은 주말되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나가야 돼요. 요즘 우리 여유 있잖아요. 주말 되면 어디라도 가야 돼. 조그마한 땅떵거리에. 경기도 수원 그쯤 돈이 거기 다 있는데 강원도 제일 먼저 가겠지 서해 쪽 빠지겠지 그리고 남해 오겠죠. 언제든지 올꺼다. 남해는

최승용 : 서울은 자주 갈 일은 없으세요?

신병윤 : 여기 내려 와서는 잘 안가죠. 수원에 있을 때는 자주 갔는데. 우리 아들이 수원에 있고 딸이 인천에 있는데. 

최승용 : 가면 남해가 그리운 마음이 드세요?

신병윤 : 도시 가면 딱 하룻밤만 자면 돼. 왜냐하면 이틀 자면 골치아퍼. 가면 건물 자동차 밖에 더 있습니까. 거기보다 자연 이게 더. 

최승용 : 남해가 고향처럼 향수가 느껴지세요?

신병윤 : 응응. 이게 안 느껴본 사람은 몰라요. 여기 와서 생활해 봐야해. 여행 하루 이틀 와서 안돼. 좀 살아야 돼. 

최승용 : 여기서는 일상을 어떻게 보내세요?

신병윤 : 여기서는 바쁘게 보내요. 문화원 같은데 잘 되어 있어요. 내가 배우고 싶은거 얼마든지 배울 수 있어요. 열시 출근해서 일곱시간 일하고 17시까지. 전시관에서 일하죠. 색스폰도 배우고 하모니카도 배우고 연습도 해야하고 바뻐요. 월요일은 복지관가서 하모니카 하고. 화요일하고 목요일은 문화원가서 색스폰 하고. 시간 나면 헬스 운동하러 거야하고. 요 지족에. 또 시간나면 자전거 타고 저 내산 쪽으로 봉화로 해서 편백림 쪽으로 자전거 타고. 

최승용 : 독일마을 외에 남해에서 애정하는 곳? 쉬고 싶은 곳은 어디세요?

신병윤 : 지금 한 쪽에만 치우치다 보니깐. 남해를 제대로 구경을 못했어. 내 성격이 그런데가 있나봐. 오토바이도 한 대 있는데 타고 다니면서 한 번 시간 내가지고 남해 사이드를 해안도로를 한 번 할까 마음만 있지 못가고 있지. 언젠가는 남해를 배타고 확 돌고 싶어요. 이제 어느정도 여기서 한 10년 했으니깐. 

최승용 : 이번에 개관전시 주제가 노스텔지아 거든요. 향수. 향수는 약이 없다. 

신병윤 : 그게 향수병이 와가지고 독일에서 자살한 사람도 더러 있어요. 그 고비를 잘 넘겨야 돼요. 그게 왔다 싶으면 한국에 와야 돼요. 고국에 와서 풀고 가야 되요. 나는 느끼지는 안했고 그냥 때 되면 왔어요. 미리미리 알아서 처방한거고 다른 사람들은 그걸 못 느끼다가 어느 때 딱 제쳐놓고 와야되는 거거든. 주로 그 때는 혼자 있을 때. 남자들은 좀 달라. 술도 한 잔씩 먹고. 여자들은 아무래도 사방팔방 떨어져 있기 때문에. 한국 사람이 없는 곳이 있어요. 다섯 사람만 있어도 해소가 되요. 그럴 때는 외롭지. 그럴 때는 마음이 약하고 내성적인 사람은 그래가지고 많지는 않은데 그런 경우도 있었어요. 

최승용 : 그 향수의 내용을 특정할 수는 없지요? 음식이다. 공기다. 산이다. 바다다. 친구다. 

신병윤 : 그리움이 뭐라고 하기는 없어요.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전체 다 포함되는거지요. 포함이 되고 나는 느껴보지는 못했어요. 

최승용 : 아까 자녀분들 댁에 갔을 때 남해로 오고 싶은 마음의 지점은 자연들 인가요?

신병윤 : 바로 그거지 뭐. 여기 오면 도시는 좀 더 복잡하잖아요. 여기는 안 그렇잖아요. 완전 별세계지. 나도 수원에서 20년 살았어요. 여기를 모르니깐. 복잡하더라도 일상생활이니깐. 아이고 여기 오니깐 딴 세상이야. 맛을 몰랐으니깐. 이제 맛을 알았으니깐 와야하는거지. 손님들이랑 이야기 해보면 남자는 오고 싶어 해요. 여자들은 안 올라 그래. 여 오면 재미없다 이거야. 여기와서 사는 것도 부부지간에 마음이 맞아야 해요.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정년퇴직한 사람들 도시에 굳이 붙어있지말고 여기와서 사는것도. 건강이 더 좋아져요. 알게모르게 건강회복이 많이 됩니다. 그래서 그런 것만 깊이 생각하면.

최승용 : 75년도에 남해대교 왔을 때 남해각은 가보셨나요?

신병윤 : 다리만 왔다갔다 하고 갔어요. 그 때는 삼천포 다리가 없었을 거에요. 그래서 진교로 해서 와서 차를 세워놓고 다리 한 번 왔다갔다 하는거지. 진해도 항구도시 이지만 비슷하거든요. 마산이나 부산이나 진해나 거의 같아요. 앞이 바다고 면이 있고 뒤에 산이 있고. 어릴 때도 진해에서 바다가고 했지요. 나이가 들어가지고 외부생활 하다가 여기와서 보니깐 생각보다 아 좋다 하는 마음적으로 느꼈지요. 마음으로는 느꼈는데 오리라고는 생각 못했지. 

최승용 : 향후 꿈이나 바램이 있으세요?

신병윤 : 나이가 이제 70이 됐는데 이제 갖고 싶은 것도 없고 그렇게 먹고 싶은 것도 없고 그렇게 자꾸 줄어들어요. 쪼금 더 편한 것이 찾아지지. 하고 싶은 것 별로 없어요. 젊었을 때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사고 싶은 것도 많고 그렇더니만. 그때는 돈이 없잖아요. 나이가 들어 돈이 있어도. 취미생활을 하니깐 열심히 좀 해야지. 말년을 여기서 보내려고 해요. 진해에서는 23년간 있었고 독일에서는 19년간 있었고 수원에서 19년 살았고 내 인생 마지막 종착지는 여기고. 이 만큼 더 좋은 곳이 어디 있습니까. 나는 골고루 다 살아봤어요. 그래도 내 나라니깐. 외국생활 하는게 물질적으로는 좋은데 정신적으로는 그렇지 않아요. 가난해도 여기가 나아요. 느낄 수 없는 그런 것이 있고. 푸근함 엄마의 품을 느껴져요 고국에는. 외국에서는 그런 걸 못 느껴요. 

최승용 : 오늘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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