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바다-민가-산


<서원숙님 남편 신병윤님>

1971년 독일 루르지방으로 신병윤님(1947년생, 독일마을)은 광부일을 하러 갔다. 그곳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서원숙님(1952년생, 독일마을)을 만나 1974년에 결혼했다. 독일로 떠난 지 5년만, 결혼한지 1년만에 한국으로 휴가를 받아 왔다. 가장 먼저 집안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드리기 위해 고향마을 진해로 갔다. 가족과 형님들이 한국에도 현수교가 생겼다며 남해대교를 구경하러 가자고 했다. 신병윤님은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 남해대교 보다는 노량마을의 풍경에 감동했다. 사실 오랜만에 찾은 고향마을 진해는 변화하고 있었고 ‘바다->민가->산’이 부드럽게 이어지는 풍경과 주변으로 새소리가 들리는 남해에 고향 마을의 향수를 느꼈다고 한다. 그 당시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오면 이런 곳에 살았으면 좋겠다.” 하며 독일로 돌아갔다.

“향수는 약이 없다.”

그렇게 5년 마다 한 번씩 한국으로 왔는데 그 당시 한국과 독일을 왔다 갔다 하는 교통비와 체류비가 벤스 한대 값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그 향수병은 고향 땅을 밟지 않으면, 고향 냄새를 맡지 않으면 낫지 않기에 어쩔 수 없이 5년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왔다고 한다. 그렇게 19년을 독일에서 살았고 한국으로 돌아와 1989년부터 수원에서 살았다. 그렇게 수원에서 또 19년을 살다가 드디어 2008년 남해 독일마을로 들어왔다.

지금은 파독전시관에서 일하며 저녁으로는 복지관에서 운동하고 문화원을 다니며 색소폰, 하모니카 연주를 배우며 살고 있다. 꿈이 있다면 자전거로 남해 해안 도로 일주를 해보는 것이고, 배를 타고 남해도를 돌아보는 것이다.

신병윤님은 “진해에서 24년->독일에서 19년->수원에서 19년 -> 그리고 남해에서”삶을 마무리 하고 싶다고 한다. 남해대교를 볼 때 마다 “나 잘 왔다.” 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것은 두 가지 의미로 “내 집 남해에 왔다.” “남해에 살러 오길 잘했다.” 이다. 고향 마을이 아님에도 남해를 고향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바다-민가-산’이 부드럽게 연결된 보존된 경관이었다. 남해대교 라는 건축물 자체도 가치가 있지만 그것과 어우러진 주변 마을과 산 그리고 바다의 모습이 보존되어야 한다. 어떤 이는 노량마을 앞 바다 매립을 안타까워 했고, 어떤 이는 봄 날 남해대교를 건너며 창안으로 들어오는 벚꽃 잎을 그리워 했다.

헤테로토피아 연구소

52443) 경남 남해군 삼동면 봉화로 538-1 헤테로토피아 연구소
538-1, Bonghwa-ro, Samdong-myeon, Namhae-gun, Gyeongsangnam-do, Republic of Korea
TEL. 055-867-1965
FAX. 055-867-1965
namhaega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