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정운자 님

이름. 정운자, 윤병기

일시. 2019년 10월 29일

장소. 설천면 왕지마을 정운자님 댁

참석자. 정운자, 윤병기, 최승용(헤테로토피아 책임연구원), 서성경(헤테로토피아 연구보조원)

 

정운자 : 우리 아저씨 친구분들이 우리 그 날 결혼식하고 신혼여행 가기 전에 대교가서 한잔하고 놀다가 가자해서 거기 갔는데, 친구분들이 이 계를 하면서 두레박 해놨지요? 이런 패를 하나씩 남기자 그 의미로 해서 우리가 맨 처음. 친구들 중에서는.

최승용 : 두레박이 무슨 모임이었어요?

정운자 : 예. 두레박 모임

최승용 : 두레박이 무슨 모임이었을까요?

정운자 : 친구분들 그냥 동창, 한 학군에, 설천초등학교 학군에 학생들만, 촌에 살고있는 친구분들만 모아서. 그래서 명칭을 두레박을 하자해서

최승용 : 그러면 결혼은 어디서 하신거예요?

정운자 : 남해읍에서 

최승용 : 읍에 결혼식장이 그 때 있었나요?

정운자 : 축복예식장.

최승용 : 거기가 어딜까요?

정운자 : 지금 전문대 위에 실내 수영장 있지요? 거기 못가서. 우체국에서 내려가면 왼쪽 편에 있었어요. 

최승용 : 예식장이 그 때 한 개 밖에 없었나요?

정운자 : 아닐 걸? 제일 예식장도 있었을 걸

최승용 : 그 때 다른 분 말 들어보니까 처가에서 하고, 오는 길에 남해대교 들러서 한 잔하고 갔다고 하더라고

정운자 : 우리는 그 때 식장이 있으니까 식장에서 하고 친구들이 우리 친구, 우리 아저씨 친구 이래서 대교가서 한 잔하고 신혼여행 보내주꾸마 하고 거기서 한 잔하고

최승용 : 남해각에서 드셨어요?

정운자 : 식당에서 먹고, 차는 남해각에서 마시고

최승용 : 남해각에서는 차만?

정운자 : 예예

최승용 : 원래 마을은 어디셨어요?

정운자 : 원래 우리 아저씨는 여기고 나는 친정이 고현면 성산

최승용 : 실례지만 어머니 몇 년 생이세요? 

정운자 : 원래는 62년생인데 실리기는 63년생으로 

최승용 :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셨어요?

정운자 : 부곡으로, 부곡하와이

최승용 : 들어보니까 남해각에도 신혼여행 많이 왔다고

정운자 : 예예. 나중에 전화하지마시고 우리 신랑은 60년생. 그거는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들하고 토요일에, 제일 오른쪽

최승용 : 무슨 고등학교인가요?

정운자 : 지금 제일고. 옛날에는 종고

최승용 : 자리가 읍에 있는 터미널 앞에?

정운자 : 전문대 자리가 종고

최승용 : 이 때가 몇 년도쯤이나 됐을까요?

정운자 : 40년 전 아니겠습니까? 

서성경 : 고등학생이니까 78년도?

최승용 : 고등학교 몇 학년인가요?

정운자 : 모르겠는데 내가 볼 때 2학년 아니면 3학년이겠지. 토요일에 학교 마치고 친구들이 가자 해서 갔다하거든. 그 시절에 가서 사진찍을 생각은 어떻게 했을고

최승용 : 사진사분이 찍어 주셨죠? 

정운자 : 그렇겠지

최승용 : 고등학생들이 여기 가서 뭐 했을까요?

정운자 : 이제 대교 생긴 지 얼마 안되니까, 서면 친구도 있고 남면 친구도 있다하니까 그쪽 친구들은 대교 생긴 게 궁금했겠지.

최승용 : 서면이랑 남면은 머니까?

정운자 : 예예 못와봤을거 아닙니까. 하여튼 그까지만 내가 알지 모르니까. 그래서 우리꺼 보다는 이거하고 저게 정확할 거 같애. 그 시절 남해차도 지나가고

최승용 : 차가 별로 없네요. 

정운자 : 없지예. 그 시절에 차가 참 귀한 시절이지. 

최승용 : 남해여객? 

정운자 : 몰라요. 남흥여객인지 남해여객인지

서성경 : 근데 여기는 색깔이 

정운자 : 이게 더 오래된 거지

최승용 : 이 때는 언제쯤인가요?

정운자 : 이거보다 더 옛날, 그 때는 추석인지 가을 제사를 모시고 왔는지 그것까지 모르겠어. 왼쪽이 시어머니, 오른쪽이 시누. 

최승용 : 시어머니가 몇 년생일까요?

정운자 : 지금 102살, 살아계시면. 1918년인가예? 그리 되나예?

최승용 : 예. 존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정운자 : 박막달. 

최승용 : 이야 옛날 이름을.. 막달이면 막내인가?

정운자 : 막내

최승용 : 아버님이랑 진짜 많이 닮았네요. 

정운자 : 닮았지요? 시아버님하고 더 닮았는데

최승용 : 이 때는 놀러 가셨을까요?

정운자 : 내 기억으로는 추석 일주일 뒤에 아버님 제사가 있거든, 제사 때인가 싶어. 제사 때 왔다 가면서 어머님이 바래다 주러가면서 사진을 찍은 거 같애. 제사라고 시누이가 와가지고

최승용 : 배타고 가셨어요? 가실때?

정운자 : 몰라 그것까지 모르겠어

최승용 : 시누 성함은 어떻게 되세요?

정운자 : 윤경지

최승용 : 아버님이 엄청 일찍 돌아가셨네요. 

정운자 : 네, 아버님이 61살, 62살에 돌아가셨어요. 

최승용 : 어머님이 고생 많이 하셨겠네요. 

정운자 : 그렇겠죠. 

최승용 : 이 때가 대략 몇 년쯤 될까요?

정운자 : 확실히는 모르겠는데 40년전이면..

최승용 : 그럼 아버님 식구들, 가족들은 다 외지에 사세요?

정운자 : 예

최승용 : 왜 다 떠났어요?

정운자 : 다 거기가 삶의 터전이니까

최승용 : 아버님 주업은 농사에요?

정운자 : 예, 농업

최승용 : 바닷일은 안하시고?

정운자 : 바닷일은 잘 안합니다.

최승용 : 왕지는 어장이 없나요?

정운자 : 어장은 없는데 개인배를 가지고 낚시도 하고 그런 거 하지

최승용 : 이 때 두레박 모임 친구들도 같이 갔겠네요?

정운자 : 예예

최승용 : 왕지로 시집을 바로 온 거예요?

정운자 : 예예

최승용 : 이 자리?

정운자 : 예

최승용 : 여기서 계속 사셨어요?

정운자 : 네

최승용 : 그럼 시어머니 모시고?

정운자 : 예

최승용 : 큰 아들이세요?

정운자 : 네, 외아들. 위에 누님들은 많고

최승용 : 아 그래서 딸들이니까 다 밖으로 나가셨구나. 도시로 나간적은 없으세요?

정운자 : 네

최승용 : 보통 한 번씩은 나갔다오잖아요?

정운자 : 갈라했는데 어머님이 아들 하나를 못 내보내서 그냥 정착을 한거지요. 24살인데 뭘 알겠나예. 정착을 시키니까 정착을 하고 산거지

최승용 : 근데 어렵잖아요. 먹고 살기가

정운자 : 뭐 어째 그런대로 살아지니까, 산거지

최승용 : 인터뷰하러 돌아다녀 보면 여기 살려다가도 어려우니까 부산가서 몇 년씩 돈벌어오고 그러더라고요.

정운자 : 얘 때문에 갈려했는데 어머님이 하도 못 가라하니, 너희 가면 내 죽는다하니. 내가 그래서 ‘엄마 혼자 1년 만 계시세요. 그럼 1년 후에 모시로 올게’ 이렇게 했어. 그래도 안 된다 하니, 내가 포기를 해야지

최승용 : 어머님은 오래 사셨네요? 

정운자 : 어머님은 91살에..

최승용 : 어머님도 농사지으셨어요?

정운자 : 예, 같이 셋이서

최승용 : 밭농사고 논농사고 다?

정운자 : 예, 우리 같이 사니까 

최승용 : 요즘은 밭농사 위주로 하시겠네요?

정운자 : 네 마늘만, 우리 먹을만큼만 심고

최승용 : 왕지마을은 처음 와 봤는데, 제 고향이 하동인데 하동 같아요. 자녀분들은 다 밖에 계세요?

정운자 : 예

최승용 : 들어올 생각안해요?

정운자 : 내가 안해, 싫어. 촌에 나 하나 살았으면 됐지

최승용 : 어디 사세요?

정운자 : 부산

최승용 : 이거는 아버님한테 물어봐야겠네요. 이 때가 몇 년도쯤 될까요?

정운자 : 79년도

최승용 : 이 때가 아버님 몇 학년때세요?

정운자 : 3학년 때

최승용 : 다 고3이에요?

정운자 : 예

최승용 : 이 때 왜 이렇게 가신거세요? 무슨 날이였어요?

윤병기 : 우리 졸업사진 찍는다고 

최승용 : 아버님 제일 친한 친구들이세요?

윤병기 : 그렇다고 봐야지

최승용 : 마을들이 어디일까요?

윤병기 : 남면, 서면, 읍

최승용 : 졸업사진을 남해대교 가서 찍으셨어요?

윤병기 : 아니, 졸업하고 몇이 가서 찍은 거

최승용 : 버스타고 가셨나요?

윤병기 : 

최승용 : 누가 찍어주셨나요?

윤병기 : 사진사

최승용 : 이렇게 하고 또 남해각가서 차 한잔 하시고?

윤병기 : 그 때는 술뭇지

최승용 : 그러면 이 친구들은 남해대교를 처음 가봤을까요? 그렇진 않겠죠?

윤병기 : 그렇지는 않지

최승용 : 아버님 이 사진은 아버님 누님, 그러면 어머님되시고. 대략 몇 년도쯤 될까요?

윤병기 :  이게 몇 년도고?

정운자 : 그거를 내가 몰라서. 41-2년 됐다 보고 있지.

최승용 : 그러면 이 때가 아버님 제사때 쯤이라고 하시던데

윤병기 : 제사때쯤

최승용 : 누나분은 부산에서 버스로 왔다가 제사모시고 어머님이 배웅하는 거네요?

정운자 : 그렇지 

최승용 : 부산가는 버스가..

윤병기 : 여기서 서거든요.

최승용 : 아 여기서 서요?

윤병기 : 네, 대교서

정운자 : 근데 한 가족사진 이리 많이 내도 되나예?

최승용 : 되죠, 너무 귀중하죠.

정운자 : 나중에 전시관에 전시가 되어있는 거 보고 이 집은 식구대로 사진을 다 내놨네 할까 싶어서 안 할라했는데

최승용 : 이 때는 누님 결혼 하셨을 땐가요?

정운자 : 안 했지, 우리보다 뒤에 했으니까.

최승용 : 누님분들은 다 부산으로 가시고? 

정운자 : 서울, 부산 

최승용 : 근데 어머님은 딸들은 다 나가라 그러고 아들은.

정운자 : 딸들은 직장을 생각해서 갔는데 거기서 남편분들을 만나서 다

최승용 : 아.. 아버님 두레박 모임은 지금 없죠?

정운자 : 하고 있습니다.

최승용 : 하고 있어요? 정확히 구성원들이 여기 아까 어머님 말로는 설천초 사람들?

정운자 : 예, 설천에 있는 친구들만. 초, 중 친구들

최승용 : 선후배 있겠네요?

윤병기 : 아니예, 다 동기들

최승용 : 두레박 아직도 있는 거에요?

윤병기 : 예

최승용 : 모임도 하시고?

윤병기 : 예, 달마다

정운자 : 두레박 모임이 36년이네

최승용 : 주로 친목 모임?

윤병기 : 예

최승용 : 두레박 회원들은 다 이거 만들어 준거예요?

윤병기 : 예

최승용 : 처음 봤어요. 이거는. 다들 사진만 있지 이렇게.. 이 세장 말고 또 없으세요?

정운자 : 아이 안 할래

최승용 : 보기라도 할게요. 아버님 친구분들은 성함이 기억 나실까요?

윤병기 : 김재봉. 모르겠는데.. 만난지가 오래되서. 졸업하고 한 번도 안봤는데. 얼굴이 기억안나니까 잘 모르겠다

최승용 : 아버님때는 읍에 모여서 놀만한 데가 있었어요?

윤병기 : 공차고 짜장면에 술먹고 그랬지

최승용 : 술집같은 거는 별로 없고요?

윤병기 : 술집 많이 갔지

최승용 : 남해대교를 자주 가셨네요

윤병기 :우리는 안가도 되는데 친구들이 가자고 하니까

최승용 : 이런 건 좋죠. 이 때가 결혼식때?

윤병기 :예, 내 친구들

최승용 : 이거는 필요하겠는데요.

윤병기 :이거? 요것만 넣지

최승용 : 왜요? 여러명 나오면 좋죠. 다 남해친구들이 었나요? 같은 동네?

윤병기 :네

최승용 : 노량 사람들은 배 이제 없어진다고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는데

윤병기 :예

최승용 : 노량마을 사람 통행이 없어진다고 

윤병기 :장사 안된다고

최승용 : 다리 기둥을 놔뒀던데가 왕지마을?

윤병기 :바로 앞에 바다에 바지선

최승용 : 바지선이?

윤병기 :예, 상판 한개씩 싣고 와서 놓고 또 와서 한개 놓고

최승용 : 그러면 큰 배가 여기까지 갖다 놓고 바지선이 하나씩?

윤병기 :예 하나씩

정운자 : 이거이거

최승용 : 좋네요. 따님이세요?

정운자 : 예, 6살때니까

최승용 : 따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정운자 : 윤지은. 

최승용 : 몇 년생인가요?

정운자 : 90년생

최승용 : 지금은 어디 사세요?

정운자 : 부산

최승용 : 이제 한 서른?

정운자 : 예

최승용 : 살만하대요? 부산은?

정운자 : 남해오라 하는데 안 온다하니까 살만하겠지

최승용 : 6살때 쯤이에요?

정운자 : 네

최승용 : 왜 갔나는 기억 안나시죠?

정운자 : 그 때? 그냥 이락사 갔다오면서 찍었지 싶은데

최승용 : 가족 놀러요?

정운자 : 예

최승용 : 이 때는 주탑이 회색이네요?

정운자 : 이 때는 원래 이색인데 중간에 이 색칠을 했어. 색깔이 안좋다해서 원위치가 된거지. 다리가 죽는다해서

최승용 : 이 때는 노량 앞에 매립했을 때인가요?

정운자 : 예

최승용 : 여기 어머님 친구분들 기억나세요? 이름이랑

정운자 : 이름? 영자. 강영,, 하정엽, 이월례. 아 나 이거 안 하고 싶은데

최승용 : 그래요? 그러면 부산이나 서울 한 번씩 가세요?

정운자 : 네

최승용 : 자녀분들 있는데?

정운자 : 예, 형제도 있고. 

윤병기 : 부산은 자주가고 서울은 1년에 한번이나 두번가고

최승용 : 가면 부산에 살고싶은 생각은 안 드세요?

윤병기 : 아이 공기도 안좋고

정운자 : 지금은 갑갑하지

최승용 : 빨리 돌아오고 싶으시겠네요?

정운자 : 예

윤병기 : 부산은 아침에 가면 오후에 내려옵니다

정운자 : 아니면 하룻밤 자고 오고

최승용 : 하룻밤도 아버님은 웬만하면 안 자고 오려고 하시고?

윤병기: 제사 때 같으면 하룻밤 자고오고

최승용 : 아 누님분들은 부산에 계시니까? 

윤병기 : 예

최승용 : 갔다가 오면 남해대교 통해서 오시겠네요?

정운자 : 예

최승용 : 남해대교 딱 보면 집에 왔다?

정운자 :  

최승용 : 다들 그러더라고요. 남해대교 보면 아 내집에 ..

정운자 :  아 살 것 같다

최승용 : 살 것 같다?

윤병기 : 우린 저만치만 와도 우리집이 보이니까 다왔구나 샀는데 

최승용 : 아,진교 저쪽에서 탁 돌 때? 거기서 이 집이 보여요?

윤병기 : 보입니다.

정운자 : 대치가 거기서 

윤병기 : 우리 밥먹을 때 거울로 밖을 보면 저 

정운자 : 서화산? 

윤병기 : 서화산 밑에 주유소 있는데 까지 다 보이는데

최승용 : 여기서 계속 사셨으면 집을 새로 한 번 지으셨겠네요

윤병기 : 네

최승용 : 이게 몇 년..?

정운자 : 13년 째

최승용 : 그럼 리모델링을 하신거예요?

정운자 : 아니, 도배도 안하고 있어요.

최승용 : 지금 방이 남겠네요?

정운자 : 네, 세하나 드릴까?

윤병기 : 방이 세 개 다 비어도 우리 여기서 자니까

최승용 : 거실에서 주무시고? 자녀분들 얼른 오라고 그러세요 남해로.

정운자 : 안온다는데 뭐

최승용 : 요새 귀촌이 트렌드인데, 부산에도 힘들텐데. 집값내고. 그럼 자주오세요?

정운자 :한 번씩 오고 우리가 자주 가지

남최승용 : 해대교를 남해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인식하더라고요. 남해 오자마자 집에 왔다.

정운자 : 섬인데 오죽하겠습니까, 다리가 연결이 되는 바람에  

최승용 : 주로 자가용으로 부산가세요?

정운자 : 네

최승용 : 아버님은 고향을 안 떠난게 더 좋으셨어요?

정운자 : 좋죠

최승용 : 그럼 누님분들은 내려오고자 하는 분들은 없으세요?

정운자 : 없어요.

최승용 : 여기로 다 모이세요? 

정운자 : 예, 이 집으로

최승용 : 언제 그렇게 모이세요?

정운자 : 봄에 벚꽃피면 모이고 가을에는 제사있어서 모이고

최승용 : 왕지마을은 어떤가요? 인구가 줄긴 줄죠?

정운자 : 그렇죠. 혼자사는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고 자제분들이 안들어오니까. 외지 사람이 들어오는데 아직 자식분들은..

최승용 : 근데 마을이 예뻐요. 

정운자 :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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