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김성곤 님

이름. 김성곤

일시. 2019년 11월 16일

장소. 삼동면 자운정 식당

참석자. 김성곤, 최승용(헤테로토피아 책임연구원), 서성경(헤테로토피아 연구보조원)

 

김성곤 : 이건 이락사인데 박대통령이 글자를 썼거든, 그때 개통식에 와서 이락사라는 글자를 대통령이 직접 썼어요. 이 사진은 돌아가신 최치환 국회의원, 신동관의원. 그 당시 경호차장이에요. 

최승용 : 사진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을 해주시면 되거든요.

김성곤 : 개통하기 전에 1973년도 6월 17일날 개통했나?

최승용 : 7월 13일날

김성곤 : 개통식이? 아니지. 6월 17일. 근데 우리가 개통식하기 전에 우리가 지원을 갔어요. 학교에서. 그래서 개통하기 전에 작업을 나갔어요. 무슨 작업이냐면 여기 도로변에 화단 정화사업을 갔거든. 그로 인해가지고 여기 온 관광객 아가씨들하고 개인 사진을 찍었어.

최승용 : 이분들은 관광을 오신 것?

김성곤 : 이분들은 관광을 오신 거고 그래서 우리가 사진찍고. 이거는 우리 전체 학생들. 

최승용 : 이때가 몇년도

김성곤 : 1972년도 봄이었어. 3월달인가 4월달인가

최승용 : 이 당시 회장님은 중학생이었나요? 고등학생이었나요?

김성곤 : 고등학교. 교련복입고 있네. 

최승용 : 어느 고등학교였나요?

김성곤 : 남해종합고등학교. 지금 현재 남해제일고등학교

최승용 : 이때가 몇 학년이었을까요?

김성곤 : 3학년. 

최승용 : 지금 이 길이..?

김성곤 : 여기가 남해고 이쪽이 하동인데 길 건너오면서 오르막길 있지요? 이 벽에다가 지금 그림 붙여놓고 있지요? 그 지점입니다. 

최승용 : 남해각 맞은편?

김성곤 : 남해각 맞은편

최승용 : 남해각이 없을 때?

김성곤 : 네. 

최승용 : 개통하기 전인데도 지금 이렇게 아가씨들이 놀러오고 그랬나요?

김성곤 : 많이 왔어요. 개통하기 전에도 관광객들이 많이 왔어요. 차량만 지금 안 다니는 것 뿐이지 다리는 다 만들어놨어요.

최승용 : 그럼 그 위를 자유롭게 걸어다닐 수 있었나요?

김성곤 : 그렇죠. 그렇죠. 다니는 데 차량은 일절 안되고 사람들은 관리자에 의해서 허락을 맡아가지고. 작업을 하기 때문에 작업에 방해된다고 그랬고. 여기는 마을 친구들. 개인사진이고, 친구들이랑 찍은 건데. 이때는 우리 사이클타고 다니면서 사진 찍은거고

최승용 : 이때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인가요?

김성곤 : 이거는 졸업하고.

최승용 : 한 언제쯤 되실까요?

김성곤 : 이때가 74년도가 됐을까? 73년도 되겠나, 아니다 74년도.

최승용 : 실례지만 회장님 몇년생이신가요?

김성곤 : 54년생

최승용 : 원래 남해가 토박이세요?

김성곤 : 제가 군대생활 빼고는 현재까지 토박입니다.

최승용 : 어느 마을에서

김성곤 : 남해읍 동산마을.

최승용 : 지금도 거기 사시나요?

김성곤 : 지금은 다른 데 살고 있죠

최승용 : 동산마을에서 태어나셔서 군생활 외에도 계속

김성곤 : 현재 남해 거주하고 있죠

최승용 : 그러면 군생활을 오래 하셨나보네요.

김성곤 : 아니. 그냥 기본 3년

최승용 : 근데 지금 재향군인회 회장님을

김성곤 : 그거 병으로써도 할 수 있거든. 군부?만 있으면 돼

최승용 : 그러면 직장생활도 다 남해에서?

김성곤 : 네

최승용 : 외부로 나가고 싶은 마음은 안드셨었어요?

김성곤 : 그 당시 제가 부모를 모시고 있었기 때문에 나갈 수가 없었어요. 부모를 모시면서 계속 직장생활하면서 그래서 이제 퇴임하고

최승용 : 친구분들은 많이 나가셨죠?

김성곤 : 많이 나가셨지. 우리가 졸업생이 460명인데 지금 현재 거주하고 있는 사람이 50-60명? 

최승용 : 그때 인터뷰하다보니까 직장이 남해에 많지가 않으니까 배타고 부산으로 

김성곤 : 그때는 주로 배타고 다녔어요. 배 이름을 가르쳐 줄까요?

최승용 : 배이름이 뭔가요?

김성곤 : 경복호도 있고, 경남호도 있었고, 한일호도 있었고, 배가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다 안나네.

최승용 : 이게 다 부산가는?

김성곤 : 부산가는 배에요. 

최승용 : 코스가 어떻게 되나요?

김성곤 : 여수에서 부산. 충무동

최승용 : 여수에서 출발해서 경유하는 곳이

김성곤 : 남해 노량, 삼천포, 그 다음에 통영, 부산.

최승용 : 소요시간이 어느정도

김성곤 : 소요시간은 6시간. 

최승용 : 그러면은 회장님 언제 부산을 처음 가셨나요?

김성곤 : 68년도인가, 

최승용 : 배로 다니던 시절하고 차로 다니던 시절이 확연히 다르죠?

김성곤 : 다르죠. 처음에 고속도로 개통하기 전에 차로 가도 6시간 걸렸어요. 지방도와 국도를 병행하면서 운행했기 때문에 그때도 차로 가도 6시간, 그 뒤에 고속도로 생겨서 그 당시에 4시간 반. 지금은 2시간 걸릴까 말까. 그리고 차로 갈때 남해에서 하동까지 도선에다가 차를 싣고 이동해서 갔지.

최승용 : 그때 이야기 들어보니까 읍이 막 높은 건물이 있거나 발전되고 그런 건

김성곤 : 그런 건 없었지, 완전 촌 시골이지. 

최승용 : 오히려 이쪽이 남해대교가 서고 남해각이 들어서고 하면서 이쪽이 번성해지고 했다고

김성곤 : 다리가 개통되고 난 이후로 발전이 많이 됐죠. 

최승용 : 남해 전체가?

김성곤 : 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우리나라가 발전됐기 때문에 더불어서 발전된거죠.

최승용 : 그러면 남해에 사는 사람인데도 남해대교를 보러 가고 그랬나요?

김성곤 : 많이 오셨죠. 남해가 그 당시만해도 교통이 불편해가지고, 대중교통이 발달되지 않아서 그때 대중교통이 남흥여객하고 남해여객하고. 버스가. 그렇게 운행했는데도 지금 같이 각 마을마다 버스가 가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다른 교통, 배로 타고 오기도 하고 버스를 타고 오기도 하고 남해사람들이 그 때 많이 구경을 왔죠.

최승용 : 거기 남해각에는 한 번씩 놀러가고 그러셨어요?

김성곤 : 그때는 우리 한참 활동할때니까 많이 갔죠. 

최승용 : 거기가 듣기로 지하가 나이트클럽이 있어서

김성곤 : 나이트클럽도 있고, 술 무러 많이 갔어.

최승용 : 거기가 있던 게 나이트 클럽이랑 

김성곤 : 나이트클럽하고 위에 건어물 판매상도 있고

최승용 : 숙소도 있었다고

김성곤 : 숙소도 있었고

최승용 : 남해대교로 갈때는 버스를 타고 가셨겠네요?

김성곤 : 그렇죠. 

최승용 : 그러면은 나이트 클럽에서 술먹고 놀면 차가 끊기잖아요

김성곤 : 그때는 택시. 술 먹으러 갈 때 택시. 자가용 있는 사람 편승도 하고 

최승용 : 여기가 남해각이 그 때, 인터뷰해보면은 남해에서는 제일 놀기 좋고 

김성곤 : 그 당시에 남해읍에도 나이트클럽이 좀 있었는데 거기는 좀 외곽이라 분위기 살린다고 해서 많이 가고 그랬죠. 남해읍에서도 나이트 클럽이 서너개 있었어. 

최승용 : 가격도 꽤 했을 텐데요

김성곤 : 오래되서 기억이 못하겠는데, 가격은 읍이나 거기나 비슷했어요. 가격은 확실히 모르겠네. 

최승용 : 그러면은 회장님 안나가신게 어머니 아버님 부양을 해야되니까 못 나가신거네요.

김성곤 : 그렇죠

최승용 : 친구분들은 많이 나가셔서 다 부산에 계시나요?

김성곤 : 전국에 다 계시지. 서울 부산 집중이고

최승용 : 그분들이 다시 돌아오기도 하셨나요?

김성곤 : 많이 돌아오셨죠. 돌아오신 친구들도 있고 앞으로 올 친구도 있고, 나이들면 다 고향 찾아오지.

최승용 : 여기서 결혼해서 자녀 낳으시고 자녀분들은 다 도시에 계시겠네요?

김성곤 : 우리 애들은 바깥에 있고

최승용 : 자녀분들이 사는 곳으로 한 번씩 가세요?

김성곤 : 가죠. 우리 애들한테 한 번 찾아가 손녀도 보고 

최승용 : 가면은, 그런 말씀 하시더라고요. 갔다가 남해로 다시 돌아올 때 대교가 보이면 괜히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되고

김성곤 : 그러니까 이제 다 사람마다 틀리는데, 우리는 워낙 많이 왔다갔다 하니까 그런 느낌은 못받아도 들어오면 남해대교 왔구나 하는 느낌은 받지, 우리 집이 가까워 오는 구나하는 느낌은 받지

최승용 : 이사진들은 개인 카메라로 다 찍은 거에요?

김성곤 : 다 개인 카메라지. 개인 카메라로 찍었지. 이때만 해도 친구들하고 어울려가지고 한참 돌아다닐 때야. 사이클타고 하동까지 갔다 왔어요. 하동에 가가지고 짜장면을 1인당 다섯그릇을 먹고 그래가지고 또 남해와서 또 먹고 그랬어요. 그때 한참 먹을 때고 돌아다닐 때에요. 이게 우리 마을에 친구들인데 다섯명. 

최승용 : 여기가 그러면 동산마을?

김성곤 : 동산마을 친구들 다섯명. 다 객지에 있지. 한 사람 남해에 있다. 셋이는 다 객지에 있고. 그때 좋았는데.

최승용 : 이거는 하동쪽이네요. 남해쪽인가요?

김성곤 : 아 하동에서 남해 올 때 찍은거네.

최승용 : 개통식때는 못 가보셨죠?

김성곤 : 아 갔죠.

최승용 : 그 때 분위기가 어땠나요?

김성곤 : 그 때 엄청나게 사람이 오셔가지고. 일본 사람들이 그 다리를 놨는데, 다리 상판 위에 사람이 전부 모여가지고 다리가 타원형이면 이렇게(일자로) 됐어요. 그래가지고 일본 기술자가 막 난리를 쳤어요. 

최승용 : 무너진다고?

김성곤 : 예, 우리 마을에는 버스를 못 탄 분들이 배를 타고 왔어요. 내 누나 친군데, 그 분은 배가 접안을 하는 데 미리 뛰어내리다가 물에 빠졌어요. 우스워서, 물에 빠져가지고 참. 그런 에피소드도 있고. 그때 엄청 왔어요. 

최승용 : 그러면 사람이 엄청나게 왔고, 다리가 휘어질 정도의

김성곤 : 많이 왔어. 그래가지고 다리가 휘어졌어.

최승용 : 근데 기술자뿐만이 아니라 거기 놀러가신 분들이 불안하거나 

김성곤 : 그런건 몰랐지. 우리 주민들은 그냥 기분이 좋아가지고, 다리가 좋아서 올라가고 싶어서 그런 상태고, 다리가 그런 형태로 올거란 생각도 못하고 그냥 막 좋아서 갔는데 막상 사람이 많이 다리에 있다보니까 그렇게 된거고 일본 기술자들이 놀래가지고 빨리 해산시키고 그런거지. 우리는 이때 작업할 때 안에도 들어가고 다니고 그랬어요. 

최승용 : 개통을 하고 나서도 차가 많이 다니진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김성곤 : 차량은 소통량은 그리 많지 않았고, 관광객 차량이 엄청나게 왔지. 그 다음에 학생들 수학여행 코스가 당연히 그냥 남해대교라. 전국적으로. 그리고 옆에 학용품, 책받침이나 자나 다 남해대교 사진을 넣어가지고. 그러니까 전국적인 수학여행 코스라. 1코스라. 그 때 엄청나게 왔어. 학생들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현수교 건립됐기 때문에.

최승용 : 그 때 와서 특별히 할 건 없잖아요. 

김성곤 : 와가지고 그냥 다리가 있다는 것만 보고. 지금은 우리가 이런 게 많이 발생되서 그렇지만 그 당시는 현수교가 우리가 생각도 못한 다리거든. 이게 원래가 동양에서 최초로 기공식을 했는데 일본놈들이 즈그 기술로 가지고 한국에다가 먼저 개통을 해주기 싫다해가지고 우리를 좀 지연을 시키면서 작업을 하고. 즈그가 먼저 뒤에 개통식을 했어. 그래가지고 최초로 일본이 다리를 먼저 개통하고 그다음에 우리가 했어. 그리하면서 전국적으로 수학여행 학생들이 많이 찾아왔지. 관광객도 많이 오고. 그 때 횟집이 성시를 이뤘어. 워낙 관광차가 많이 들어와서. 

최승용 : 건설은 현대건설이

김성곤 : 사업은 현대건설이고 주 기술은 일본인 사람들이고. 읍에 숙소를 두고 먹고 자고 하면서 다리를 건설했지.

최승용 : 이 사진은 화단 조성 지원 나간거고, 작업이라는 게 삽질이고 그런 거 였나 보네요. 

김성곤 : 그렇지. 화단이 아직까지 미완성이라. 이거를 가지고 성토 작업하고 잔디 입히고 나무 심고 그런 작업이었어. 

최승용 : 근데 그런 거에 학생들까지 동원 됐나 보네요. 

김성곤 : 사람은 없으니까. 개통 날짜는 다가오지, 명색이 대통령이 오시는데 그러니까 빨리 작업을 할라니까 학생들 동원시키고

최승용 : 그렇게 된거고 이거는 졸업하시고 친구들이랑 자전거타고

김성곤 : 네. 하동에 많이 갔어요. 운동한다고.

최승용 : 회장님 이제 다 은퇴하셨네요. 직업적으로는

김성곤 : 지금은 이제 퇴직했지. 나이가 칠십이 다 되는데. 

최승용 : 계속 남해에서 사시는 거죠?

김성곤 : 그렇죠. 이제 내가 이제 여기서 묻어야지.

최승용 : 자녀분들은 들어오실 생각은 없으세요?

김성곤 : 모르겠어요. 걔네들은 개성이 강하니까 올란지 안올란지 모르지

최승용 :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은 없으세요?

김성곤 : 옛날 어른들같으면 들어오라쿠고 하겠는데 내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 애들한테 가고 싶지도 않고. 그냥 부부끼리 둘이서, 하다가 안되면 요양원에 들어가던지. 애들한테 의지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모시려해도 내는 가고 싶지 않아. 애들한테. 

최승용 : 그러면 어머님 아버님을 결혼해서도 쭉 계속 모신거세요?

김성곤 : 그렇죠. 다 돌아가셨죠. 내는 막내로 태어나서 어머니 아버지 연세가 많아, 지금 살아계시면 110살 되나, 

최승용 : 위에 형제분들은?

김성곤 : 계시는데 직장이 객지생활해서 못들어와, 직업 때문에 그래서 내가 모신다했지.

최승용 : 실례지만 어떤 농사를 지으셨나요?

김성곤 : 아니, 나는 남흥여객에서 33년간 근무하고 

최승용 : 그러면 진짜 잘 아시겠네요. 남해는

김성곤 : 나는 산증인지, 내 나이에는

최승용 : 아까 말한 국회의원은, 

김성곤 : 신동관 의원은 뒤에, 개통할 때 박정희 대통령 신임을 얻어서 국회의원이 됐고, 최치환 의원님은 대한민국 최연소 경찰국장을 했어요. 지금은 경찰청장이지. 그 당시에 박대통령이 여수에서 남해 올 때 배를 타고 왔어요. 배타고 오면서 최치환 의원께서 남해에 다리를 하나 주십시요, 방문기념으로 그래서 남해대교를 건립하게 됐어요. 그 당시 우리 국민 경제력가지고 이런 다리를 하기 굉장히 하기 어려웠어요. 그런 상황에서 그분이 최고 은덕이지.

최승용 :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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