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박영례, 하종준 님

이름. 박영례, 하종준

일시. 2019년 11월 20일

장소. 남해읍 박영례님 댁

참석자. 박영례, 하종준, 최승용(헤테로토피아 책임연구원), 서성경(헤테로토피아 연구보조원)

 

박영례 : 대교에 지나가면서 신혼여행 갈 때고, 76년도에 했으니까, 12월 12일날 결혼했거든. 경주로 신혼여행 갈 때 찍은 거라.

최승용 : 이 때 남해대교에 어떤 연유로 들리신 거에요?

박영례 : 신혼여행 가는 길목에 바로 안 가고 여기서 친구들 다 따라 와가지고, 한번 돌고. 여기서 대교를 배경으로, 그 때 대교가 제일 좋은 지역이 거든요. 그래서 찍은거라. 일부러

최승용 : 이쪽이 남해각 ?

박영례 : 이쪽이 남해각 있는 쪽.

하종준 : 남해각 있는 옆 마당

최승용 : 이거는 하객들? 친구들?

박영례 : 친구들. 76년도 12월 12일. 얼마나 따뜻했는데 그때는.

최승용 : 그러면 경주로 가기전에?

박영례 : 네

최승용 : 여기서 사진만 찍은 건가요?

박영례 : 응 사진만.

최승용 : 사진은 누가 찍어줬나요?

박영례 : 사진사, 해양사진관이

최승용 : 지금도 있지 않나요?

하종준 : 있는데 사람이 바꼈지.

최승용 : 이 당시 남해대교는 가서 사진 찍을만 했나 봐요?

하종준 : 그렇지, 그 당시 많이 가서 찍었지.

박영례 : 이것도 내가 처녀때 사진인데, 군청 다닐 때. 이게 최고로 좋은 배경이라.

최승용 : 여기가 군청 근무하던 시절에 동료 여직원들과

하종준 : 나무심고 노량가서 사진 찍고

박영례 : 이 때 식재를 지금 벗나무, 벚꽃나무 있지? 그거 전부 식재를 군청 직원들이나 설천면 직원들이 나가서 그 때 그 당시 다 우리가 식재를 한거라. 우리 시절에. 그게 그렇게 40년 50년 되서 컸다이가.

최승용 : 여기가 땅 넓히기 전이네요?

박영례 : 그렇지 . 바로 개통한 그 해 인가 보다.

하종준 : 그 때 나무를 개통한다고 며칠을 심었거든. 우리도 두 군데 심었거든. 조경한다고. 이락사까지. 대통령 온다고.

박영례 : 그 때 박정희다. 그지?

하종준 : 박정희 대통령 온다고

최승용 : 어머니 군청에서 오랫동안 일하셨어요?

박영례 : 한 8년? 애기 낳을 때까지

최승용 : 그럼 아버님도 같이 근무하셨어요?

하종준 : 응

최승용 : 그럼 거기서 만나신 거에요?

박영례 : 나는 군청에 근무하고 이분은 면에 근무할 때.

최승용 : 그리고 제일 오래된 순으로 볼까요?

하종준 : 이게 72년도 이것도 식목일이네. 나무 심을 때네.

박영례 : 그때 장 그 애들이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누군지 몰라요.

최승용 : 무슨 군인이 총도 들고 있네요.

하종준 : 경비원. 대교 경비할 때. 그때 대교 지킬 거. 제일 처음 개통 했을 때 경비원이 있었어.

최승용 : 이때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77년도

박영례 : 76년도에 결혼했으니까 26살.

하종준 : 그 다음 오래된 사진이 딸 둘이 낳아서 어린이날 대교간 거.

최승용 : 그 때가 몇 년도 쯤 될까요?

박영례 : 3살 5살 아닐까? 2살 터울이거든.

최승용 : 지금 따님이 몇 년생인가요?

박영례 : 78년, 80년

최승용 : 지금 어디 사세요?

박영례 : 서울

최승용 : 남해로는 안 내려와요?

박영례 : 어쩌다 명절이나 휴가때

최승용 : 남해에 귀촌 할 생각 없대요?

박영례 : 아니, 신랑이 거기 있으니까, 둘 다 직장도 거기 있고.

최승용 : 따님 성함은 어떻게 될까요?

박영례 : 얘는 하상희, 얘는 하도.

하종준 : 그때는 갈데 없으니까 이락사로

최승용 : 얘들이 놀 만한 그런 건 없었죠?

하종준 : 하모. 없고. 구경삼아

박영례 : 그거 있다. 말 탄거

최승용 : 이 사진은 아버님이 찍어 주셨을까요?

하종준 : 내가 찍었나 싶으다.

최승용 : 이 때가 어머님이 연세가 어떻게 되실까요?

박영례 : 31 살 되겠나

최승용 : 그런데 남해대교 색깔이 지금처럼 쨍하지 않네요?

박영례 : 한동안에 회색이었어

하종준 : 회색을 해 놓으니까 다 궂다고, 원래 제일 처음 빨간색이었고 중간에 칠한 게 회색으로 했어. 그걸 한 몇 십년 했다. 그러고 다시 칠한거 지.

최승용 : 이 배는 뭔가요? 박영례 지나가는 배지

하종준 : 이건 유람선이지. 엔젤호인갑다. 여수에서 부산가는 엔젤호가 있었 거든. 쾌속선. 그 때 당시 제일 빠른 배였지.

최승용 : 그러면 버스 있어도 이거 타고 다니는 사람들 있었나요?

하종준 : 그때 많이 타고 다녔지. 버스는 몇 시간을 비포장 도로를 가니까. 이것도 승차권을 구하기 힘들고 그랬거든. 정원이 얼마 안되거든. 한 30-40명?

최승용 : 엔젤호는 남해에서 부산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하종준 : 그때 2시간 몇 분 걸렸나 그랬을 거야. 그게 일반은 5-6시간 걸렸는데 절반으로 갔으니까.

최승용 : 버스는 어느 정도 걸렸나요?

박영례 : 버스는 비포장 도로로 가니까 6-7 시간이지

하종준 : 하루종일 갔다. 먼지 둘러 쓰고. 국도를 타고 저 마산으로 해서 진영으로 해서 그리 갔다. 아이고

박영례 : 노량에서 신노량으로 도선, 버스를 실어서 저쪽가서 내려가지고 그걸 타고 터덜터덜해서 얼마나 오래가는데, 버스타는 게 6 시간씩이다.

하종준 : 여기서 진교로 해서 국도를 타고 가가지고, 진주를 거쳐서 그 다음에 고성 가는 길로 해가 마산으로 가서 마산서 진영 넘어서 그리 김해로 들어가는데, 아이고 말도 마라. 갔다 오면 먼지가 막 하얗게

박영례 : 요새 캄보디아 가는 식이다

하종준 : 옆에 창문으로 먼지가 달리면 들어오거든. 가면 머리가 하얘. 먼지를 둘러쓰고. 말도 못한다. 그 때.

최승용 : 그러면 부산에 청에도 가셨겠네요?

하종준 : 우리 다닐 때는 부산에 도청이 있었지.

최승용 : 버스타고 가시는 거에요?

하종준 : 그렇지. 배타고 많이 갔어. 밤배로 타고 내려가는 거야. 자면 뒷날 아침, 새벽에 떨어지거든 .

박영례 : 출장가니까

최승용 : 출장을 배타고?

하종준 : 응 교육원도 부산에 있었고

최승용 : 그럼 하루 자고 와야겠네요?

하종준 : 응 그렇지 , 당일은 없고 무조건 자고 와야 돼

최승용 : 그럼 배에서 먹고 자는 거는?

하종준 : 사먹어야지

박영례 : 배타서 통영가면 김밥있지? 충무김밥

하종준 : 충무가면 딱 12시라, 여기서 8시 배타고 가면 충무가면 딱 12시야. 김밥 장사들이 머리에 이고 와

박영례 : 배를 타고 엄마들이 드럼에다가

하종준 : 김밥 장사들이 머리에 이고 올라와, 그래서 충무김밥이 그 때 충무김 밥이다.

최승용 : 8시면 아침 8시죠?

하종준 : 예, 오전 8시

최승용 : 가서 충무 도착하면 12시 되면은 하종준 예, 딱 정확히 12시에 들어가구만 최승용 그럼 다라이 아줌마가 들어오고

박영례 : 드람이다 드람. 다라이도 아니고 나무 드람이라고, 나무로 만들어진거 사각으로 짜져가 있어 . 그러면 할머니들이 통영 충무에서 배를 타고 배쪽으로 오는 거야.

하종준 : 배가 조금 쉬어. 다른 항에는 배가 닿아서 빨리 사람 풀고 바로 나오는데 , 충무가서는 몇 분 쉬어 . 그럼 그 사람들이 배에서 팔고 내려가고 그랬지.

최승용 : 다 여기서 그럼 점심 먹겠네요? 이걸로

하종준 : 거기가면 사 먹어야 돼.

최승용 : 가격은 혹시 기억나세요 ?

하종준 : 가격은 모르겠어 . 그 때 얼마 안 했어

박영례 : 1등실, 2등실, 3등실 있었다이가.

하종준 : 그 때는 2등, 3등. 1등은 없었고 . 육상 밑에, 3등실은 물 밑으로

최승용 : 그럼 여기 충무김밥 팔러 들어오는 아주머니들이 많았어요? 숫자가?

하종준 : 상당히 많았지

박영례 : 내 기억으로는 할매들인데 전부 다

최승용 : 한 몇 팀 돼요 ?

하종준 : 제법 많더라, 숫자는 안 세어봐서. 층별로 돌아다니니까. 선실에 가 면 통로로 다니면서 파니까

박영례 : 사람 아구 앞에 가서 파는거지 , 우리가 가서 사는 게 아니고 .

최승용 : 그럼 마실거리는 ?

하종준 : 없어 . 마실거리는 이동 상인들이 삼천포에서도 타고 충무까지 팔고 또 내리고 . 또 올라오는 배로 삼천포로 오는 사람이 있었다 . 그런 사람들이 많이 다녔지. 요새 기차에 파는 사람있제? 그 비슷해. 그렇게 팔았지. 이 사진은 대교에 말이 있을 때거든.

박영례 : 한창 그게 볼거리 . 탈거리가 유일하게 말이다 .

하종준 : 우리 큰딸, 작은 딸. 그때 남해각 광장에 말을 갖다 놓고 대교를 배경으로 찍으면 돈을 좀 주고 그랬거든.

최승용 : 이 때가 자제분들이 몇 살쯤 됐을까요?

박영례 : 알 수가 없다.

최승용 : 무슨 날인지 기억나세요?

박영례 : 어린이날이나 가지 다른 때는 안 갔거든 .

최승용 : 옷이 맞나?

하종준 : 이건 겨울이다, 겨울. 초봄인갑다. 옆에 개나리 핀 거 같은데.

박영례 : 어린이날 아닐까?

하종준 : 어린이날 개나리 안핀다. 늦다. 늦어. 개나리는 4월 초에 피는데.

최승용 : 왼쪽이 언니요?

하종준 : 응, 언니. 이쪽이 동생

최승용 : 여기 날짜가 있네요. 어버이날이네요. 89년 5월 8일.

박영례 : 아이구 그래요?

최승용 : 그 다음이 언제쯤일까요? 이것도 오래 돼 보이네요.

하종준 : 그것도 딸하고 노량 가가지고 버스오는 데

최승용 : 이쪽이 버스 타는 곳이에요?

하종준 : 남해대교 현판 있는 데

최승용 : 이거는

하종준 : 옆에 누요?

박영례 : 이게 정열아베인갑다 . 만우슈퍼 애들 아버지 .

최승용 : 왼쪽은 아버님이시죠?

하종준 : 예

최승용 : 실례지만 아버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하종준 : 하종준

최승용 : 몇 년생이세요?

하종준 : 49년

최승용 : 원래 동네는 여기세요?

하종준 : 응

박영례 : 저기 오동베이. 요새는 오동마을이어도 전에는 오동베이라했거든

최승용 : 오동뱅이?

박영례 : 원래는 오동방인데 그냥 발음이 오동베이라 했어.

최승용 : 원래는 오동방이었어요?

박영례 : 응

하종준 : 남해에 육방이 있었어.

최승용 : 그게 뭔가요?

하종준 : 그 육방이 오동방, 세방, 꼭두방, 또 뭔 방이더라? 하여튼 여섯방이 있어. 군지에 나오거든

최승용 : 오동마을 엄청 좋던데요?

박영례 : 요새는 좋아졌는데 옛날에 길이 오솔길, 사잇길 이래가지고. 우리는 읍에 살고 큰 댁은 오동에 있고 이랬거든. 애기들 오토바이 태우고 뒤 등허리에 업고 이렇게 큰집에 올라가고 그랬다. 요새는 진짜 좋아졌 지.

최승용 : 만우슈퍼 사장님과 많이 친하셨나봐요?

하종준 : 응, 친하지

박영례 : 애기들이 나이가 똑같거든.

최승용 : 이 분은 슈퍼를 오랫동안 했어요?

하종준 : 엄청 오래 했었지. 얼마 전에 씨유한테 넘긴 게 4-5 년 됐나

최승용 : 그래도 됐나 보네요. 이렇게 오랫동안 박영례 잘 됐지. 앞에 여관있고.

하종준 : 장사에 지쳐서 넘겨줬지

최승용 : 그 다음이 이건가요?

하종준 : 이거는 노량에 대교 밑에 모터보트 있는 거

최승용 : 모터보트?

하종준 : 모터보트 유람선 선착장에서

최승용 : 84년도 네요. 이 때는 이걸 놀이공원처럼?

하종준 : 타면, 돈 받고 태워 주는 거. 대도 있는 쪽으로 돌아서 한 바퀴 돌면은 얼마 이래가지고

최승용 : 그럼 이거를 자녀분들 태워주고 그랬나보네요?

박영례 : 응. 그 때는 우리 아들은 안 탔을 거다.

하종준 : 겁이 나서 안 탈라고, 물을 치고 달리니까

최승용 : 아

하종준 : 이거는 유치원이가? 어린이집이가? 놀러 가서 찍은 거네.

박영례 : 학원 애들이네,

최승용 : 아드님은 몇 년생이세요?

하종준 : 80년

박영례 : 아이구, 참. 도야가 80년이지. 97년

하종준 : 아, 97년 생이다.

최승용 : 이 때는 그냥 한번 간거죠 ? 특별한 날은 아니고?

박영례 : 응. 아니고

최승용 : 아까 단체사진은?

박영례 : 기억을 못하겠다, 유치원 때나 되는 갑다.

하종준 : 유치원 소풍인가, 야외에서 하는 그런 거

최승용 : 그 때도 유치원 소풍을 남해대교로 가요?

박영례 : 그렇지, 갈 때가 없으니까

하종준 : 남해대교 그리 돌아갔다 오는 게 공식행사라

박영례 : 제일 좋은 데가 거긴데

하종준 : 거기 이락사 있지, 충열사도 있지. 그쪽 많이 다녔어

최승용 : 애들은 좀 지루했겠네요

하종준 : 좋다하지. 나가면 좋다하지. 요새같이 놀이원이 없으니까. 차타고 나가면 좋다하지.

박영례 : 지루한 것도 없지, 그 때 볼거리가 그것 뿐인데. 그게 최고지 뭐

하종준 : 이거는 우리 도야 중학교 때 소풍가서 찍은 건 갑다.

최승용 : 이때가 대교 회색 시절

하종준 : 응. 작은 딸 중학생 때. 약간 최근이다.

박영례 : 사진이 좋네. 반짝반짝하니

최승용 : 이 때는 비슷하네요. 대교매점도 있고. 근데 도시락은 다 싸가지고 갔나보네요.

박영례 : 응 각자 도시락 싸가지

최승용 : 이야, 중학교 소풍인데 또 남해대교를 가요?

박영례 : 응. 다른 데도 갔겠지만 또 남해대교를 갔는가. 참 최고의.. 안그러 면 쇠섬

하종준 : 쇠섬은 여기서 가까운데

박영례 : 쇠섬은 어린이날 그럴 때나 갔고. 남산이고 그렇지

최승용 : 여기서 따님은 누굴까요?

하종준 : 우리 딸이.. 이게 상희다 상희.

박영례 : 앞에가 우리 도야

최승용 : 청자켓이?

박영례 : 옷보니 도야네

최승용 : 여기 남해각에도 가보셨어요?

박영례 : 당연하지. 그 때 얼마나 유명했는데

최승용 : 뭐하러 가셨어요?

박영례 : 남해각에는 잡화같은 것도 팔고 음식점도 있고 옛날에 남해각 처음 지을 때 남해각 아가씨 있었다? 남해각 아가씨 선발이 있었다, 군청 다닐 때. 처음에는 약간 날렸다.

서성경 : 선발하면 뭐 어떤 걸 ..?

박영례 : 몰라 거기서 뭘 했는고. 그래가지고 쇠퇴가 되더라고. 처음에는 약간 날렸다, 남해에서 저런 건물이

하종준 : 여기 있는 게 잡화점, 음식점, 건어물점, 여관 전부 다 들어가있었거든

최승용 : 그럼 여기가서 하시는게

하종준 : 지하에는 나이트클럽 유명했다. 한동안.

최승용 : 한 동안이라는 게 한 10 년은 돼요?

하종준 : 그 정도 되겠지.

최승용 : 여기 가시는 게 음식 드시러?

하종준 : 하모

박영례 : 대교가면 들려보는 거지, 비싸서. 먹기는 먹어봤다만은. 우리 생각 에 비싸서 안 들어가 .

하종준 : 식사는 잘 안하지, 둘러보고

박영례 : 짜장면이나 기껏 먹고 오는 거지

최승용 : 노량에 짜장면 먹을 데가 있었어요?

박영례 : 없었어요. 아니 우리 수준에는 그런 거지, 거기 들어가서 음식 먹을 생각을 안 한다니까. 레스토랑 비슷하게, 써는 게 있었다.

하종준 : 레스토랑 식으로

박영례 : 고급이다. 거기는. 촌사람들이 거기 가나, 그러니까 안 되는 거지

최승용 : 그럼 여기를 누가 주로 이용해요? 관광객들?

하종준 : 일반인들이 많이 이용했지.

박영례 : 옛날에 남해대교가 동양에서 제일 크다 했거든, 현수교제? 근데 소 문에는 이 다리를 생전에 3번을 건너고 왔다갔다해야 저승길이 밝대. 그래서 전라도 사람들이 얼마나 왔는지 모른다. 다리 밟으러. 한 번 왔다가면 안되고 최하 3 번은 왔다 가야 된다는 전설 아닌 전설을 막 만들어가지고 .. 요새는 밟히는 게 다리 아니가 . 그 때 그 당시는 그랬다. 참 유명했다 이 다리가, 만들어질 때.

최승용 : 개통식은 안 가셨죠?

하종준 : 갔지

최승용 : 아 가셨어요? 그 풍경 한 번 이야기 해주세요

박영례 : 풍경이야 신문에 난 그대로다

하종준 : 개통할 때 노량 밑에서 하고, 광장에서 하고. 그때 박정희 대통령이 어디로 왔냐하면 헬기로 지금 노량 공원 해놓은 자리 있제 ? 깔기 전 에는 높았거든? 거기 헬기장이 있어서 거기서 내렸어. 거기서 내려 와가지고 차를 타고 노량 밑에 광장에 와가지고 개통식을 하고 테이 프를 끊으러 여기 올라왔어. 엄청 사람이 많아. 그래가지고 테이프를 끊으니까 저리 지나가고, 지금 노량 건너편에 다리 박물관 지어놨제? 거기에서 헬기를 타고 올라갔거든 , 헬기가 그쪽으로 가가지고. 그리 지나갔는데 그 뒤에 사람이 따라 갔는데 대교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 이 다 차삣는기라, 다리가 흔들렸는 기라. 이동을 해서 흔들려서 그 러니까 다리가 막 움직이는기라. 그러니까 흔들려 놓으니까 바로 통 제를 하는기라, 큰 일 난다고. 사람을 통제를 해가지고 이리 빼내가 지고 못가라해서 일부는 천천히 줄을 서서 들어갔지. 여기서 여까지 사람으로 다 차니까 다리가 흔들려가지고 사람이 바람이 불어서 움직 이는 것처럼 이리 흔들리삔기라. 그러니까 시공 기술자들이 놀래가지 고 난리가 났거든. 그래가 통제를 해가지고 그리..

박영례 : 중요한 거는 요새 같으면 수소를 넣어가 풍선을 해야된다이가 ? 우리 직원들, 여직원들이랑 남자 직원들이랑 다리 밑에 어디 집에서, 내 지금 기억이 안 나서 누구 집인지 모르겠다, 전부 다 불었다이가. 불고 그걸 쑤시넣고 이래가지고 들고 있다가 대통령 온다, 확 날리자 해가지고 우리는 다리 밑에서 풍선을 한가득 들고서 빵 하면서 날리고 그랬거든. 요새 같으면 참말로 후진 짓을 했제?

하종준 : 그 때 당신도 다리가 흔들려서 겁이 나가지고 놀랬다이가

박영례 : 개통할 때 다리 밑에 있었다

하종준 : 나는 다리 절반 요정도 갔을 때  흔들어 제치는데 고마 술취한 것처럼 이리 ..

박영례 : 우린 타도 못했다. 다리 밑에서 행사한다고 풍선들고 있는다고, 죽기 살기로 들고있었다이가

하종준 : 그러니까 이제 시공자들이 큰일났다 해가지고 사람 못 들어 가고로 막았다이가.

최승용 : 이게 다리면 여기 내려서

하종준 : 여기 하동이거든, 노량에 내려서 광장에 와가지고 개통식하고. 제일 처음 내려가지고 이락사를 먼저 갔어. 갔다가 글 써주고 와가지고 개 통식하고 다리 올라가서 테이프를 끊고 걸어서 하동 쪽에 헬기가 이 동해서 그쪽에서 타고 올라갔지

최승용 : 개통식은 광장에서 했어요?

하종준 : 광장에서, 위에는 광장이 없으니까 .

하종준 : 근데 군청 직원들이 다 동원됐어요?

박영례 : 응 군청직원, 설천면직원 다 갔지. 군청이 텅텅 비어 있었다.

최승용 : 여기는

하종준 : 이게 말탄다고 올라서는 봉을 만들어 놨거든. 그 위에 서가지고. 키 가 작으니까 거기 올라가서 찍었나보네. 이거는 우리 가족사진. 대교에서

박영례 : 그저 대교다

최승용 : 이건 무슨 날은 아닌가요?

박영례 : 날만 가지. 평소 때는 안 간다. 일요일도 근무하고 평생 그랬는데, 날만 날 잡아서 갔지

하종준 : 그 때는 토요일이고 일요일이고 내 근무했다

최승용 : 가면 뭐해요?

박영례 : 일이 많아, 밤에도 하고

하종준 : 전부 수작업으로 손으로 하니까. 컴퓨터가 없으니까. 전부 써야되니 까. 등사판 프린트 전부 쇠, 공문도 철필로 가지고 원지에다 써가지 고 밀어가지고 보내고 그랬어.

박영례 : 먹물로 해가지고, 아이구 오래된 이야기다.

하종준 : 제일 처음에 잉크 기름이거든. 그게 손에 어찌그리 잘 묻네. 씻기도 안한다.

최승용 : 그런 거 한다고 주말에도 나가고,

하종준 : 주말이 있나

박영례 : 그러니까 무슨 날에 갔지, 일요일 따로 놀러가고 이런 거 전 혀 꿈도 못꾸지

최승용 : 사진 왼쪽은 누구세요?

박영례 : 모르겠어

하종준 : 누군지 모르겠다. 손님인데. 군청에서 온 손님인데 누군지

박영례 : 참 젊을 때니까 멋지다. 이쁘긴 이쁘다, 당신.

하종준 : 보통 노량가서 점심 대접하고 그리 왔거든. 그 때는 대교가

최승용 : 생소하니까, 노량 밑에 가서 다리 배경으로 횟집에 식사하고 다리 올라가서 한번 구경하면서 사진찍고가고 그랬지

최승용 : 노량에서 횟집가서 식사하고 그런 게 외부에 손님오면 코스네요?

하종준 : 하모. 접대하고. 구경 시켜줄 게 마땅히 없잖아. 노량은 나가는 곳이 니까. 거기 구경하고 가라고. 안으로 들어가면 시간이 없으니까. 노 량 쪽으로 가서. 그래서 노량 횟집에서 접대를 많이 했거든.

최승용 : 이거는 군내 버스인가요?

하종준 : 남해군 버스지

박영례 : 군 버스가 아니라 시외버스지, 거기 지나가면은.

하종준 : 부산이나 진주가는 버스겠지, 그 때는 서울 안 갔을거고.

최승용 : 이 때가 대략 두 분 몇 살쯤 일까요?

하종준 : 기억이 안난다

박영례 : 도야가 있으니까

하종준 : 장 그때 그 사진이네, 도야 6살이나 되겠다.

최승용 : 이 현판 앞에서도 많이 찍었나 보네요?

하종준 : 예, 기념으로 상징.

박영례 : 남해대교 상징아니가

하종준 : 그러니까 남해대교를 찍어 놓고 전부 뒤 배경은 하동이 된다 안하나, 하동 노량이 다 나와삐니까

최승용 : 이거는 아드님하고?

하종준 : 아들하고 딸하고 엄마하고

최승용 : 그것는 최근 사진인가 보네요?

하종준 : 이거는 최근 사진. 90년대

최승용 : 이거는 아드님하고 작은 딸?

하종준 : 응

박영례 : 요새는 군기가 저렇나?

하종준 : 그 때 김두관씨 와서 한 거거든

최승용 : 사진이 엄청 많으시네요.

박영례 : 더 있지, 많이 있지. 대교에 관련되서는 저것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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